곽동협 운경의료재단 곽병원 원장(출처 : 영남일보, 2021년 1월 8일자)
수년 전 장례식장에서의 일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어르신이 간경화증으로 고생하다 별세하시어 조문을 갔는데, 동석한 역사학 전공의 퇴임 노교수님이 "TV에 '생로병사의 비밀'이란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 '생로사(生老死)'는 인정하겠는데 인간에게 왜 '병(病)'이란 게 있는지 모르겠어. 만약 인간에게 병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난해한 질문을 하셨다.
평소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주제였으나 "의사로서 사망진단서의 사인에 '자연사'로 발행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아마 100세까지, 아니 어쩌면 그 이상도 생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하였다. 덧붙여 "제가 임상에서 직접 경험한 최고령 환자는 109세 할머니였다. 내과적 기저질환이 없었던 그분은 1999년 말 교통사고로 본원에 입원하여 큰 수술인 '고관절 치환술'을 받고 무사히 회복한 뒤 2000년 병상에서 110세를 맞이하였으나 얼마 후 '폐렴' 으로 작고하셨다"고 말씀드렸다.
122세에 사망한 프랑스의 잔느 칼망 할머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생존한 여성이다. 이 분야 전문가에 의하면 암 등의 질병이나 사고 같은 외부요인에 의해 수명이 단축되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 경우 인간의 최대 수명은 120세에서 150세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물론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평균 수명은 이보다 훨씬 짧다. 현대인의 평균수명은 영·유아 사망률의 감소, 심혈관계 질환 사망률 감소 등으로 인해 대폭 연장되었다. 필자가 전공의 시절이었던 1980년대 당시 환자의 나이가 60세만 넘으면 "나이가 많아서 회복이 되지 않고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경고는 필수였다. 하지만 요즘 아무도 회갑 잔치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훨씬 길어졌다. 한국인의 수명은 2008년 80세를 넘어섰고 2019년에는 83.3세라 한다. 그런데 120세를 기준으로 하면 아직 대부분의 사람은 질병 등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최대 수명을 모두 채우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이 2019년 발표한 한국인의 최다 사망원인은 '암'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암의 예방이나 조기 발견이 수명연장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함은 자명하다. 암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폐암은 '금연'으로, 간암은 '신생아 형간염 예방접종'과 '바이러스성 간염 치료'로 상당부분 예방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흔한 암인 위암, 자궁암, 유방암은 '매년 정기검진'을 통해 조기 발견만 되면 완치가 가능한 암이다. 대장암은 '대장용종을 내시경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예방이 가능하다. 암 이외 중요한 사인인 심·뇌혈관질환, 폐렴, 당뇨병 등도 적절한 약물치료, 식이요법, 운동 등으로 어느 정도 예방 및 관리가 가능한 질환이다. 지금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는 코로나19도 수년 내 효과 있는 백신이 상용화되는 시점에는 무난히 극복될 것이다.
회복이 불가능해진 장기의 경우 현재 시행 중인 생체 및 뇌사자로부터의 장기이식에서 나아가 동물이나 인공장기로 교체할 날도 머지않았다고 본다. 아울러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간의 노화를 지연시키는 약물도 개발이 가능할지 기대해 본다. 인류의 염원이던 무병장수의 시대가 조만간 열릴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그날이 오면 현재 인간의 최대 수명이라 추정하는 평균수명 120~150세가 크게 과장된 수치가 아닐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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