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창업 살맛 나요 (2002. 2. 2)
‘노인들이여 바빠져라’. 뒷방신세를 벗어나려는 노인들이 많다. 돈이 없어 일한다기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문 밖을 나서는 노인들이 적잖은 것이다. 평균수명 연장에다 사회전반에 불어닥친 조기퇴출 열풍, 50대까지 노인으로 편입되고 있는 사회풍토. 노인들의 숫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앉아 쉬는 노년’이 부담스러운 이유다.
보건복지부 지정 노인자활후견기관인 운경재단 대구 시니어클럽의 창업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에 성공, 세월을 바꾸고 있는 은빛 발걸음을 따라가봤다.
▨김치공장 할머니 사장님
서태수(69) 할머니는 6년전부터 자신의 집에서 조그맣게 꾸려오던 김치제조업을 확장, 김치배달업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서 할머니는 지난해 말 창업교육을 받은 뒤 인터넷을 이용, 각 가정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가정김치 주문배달과 각 체인점 등에 주문김치 배달 납품업을 할 계획을 짰다. 창업프로그램을 통해 동업자 6명도 만났다.
‘할매 김치나라’라는 사이트도 곧 개설할 예정. 각종 김치 담그는법과 반찬 노하우 등을 곁들여 ‘김치 명가 사이트’로 만든다는 목표다.
서 할머니는 재래시장 김치 전문 판매매장은 물론 요즘 각광받고 있는 시내 찜닭 전문체인업체에 동치미, 물김치를 납품하며 쌓은 노하우를 사업확장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서 할머니의 사업원칙은 품질 우선. 품질보다 제품단가를 낮추려는 풍토 때문에 제대로 된 재료 넣기를 포기하고 물량만 맞추어 납품하면 된다는 의식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서 할머니는 이런 풍조를 못마땅히 여긴다. 서 할머니는 자신이 만드는 김치에 16가지의 양념을 넣고 있다.
“남편 뒷바라지하고 4남매 키우고, 예순이 되기 전엔 살림만 했어요. 그런데 애들이 다 자립하고나니 나도 뭔가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할 줄 아는 게 없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반찬 만드는 건 자신 있었어요. 그래서 김치 만들기를 시작했는데 일을 시작하니까 사는 맛이 나요”.
칠순이 내일 모레지만 서 할머니는 적극적이다. 시니어센터의 창업 프로그램도 신문을 보고 알아냈다. 요즘도 열심히 신문을 구석구석 살피며 도움되는 것을 찾는다.
사업을 어떻게 확장할까 고민하는 것도 일과다. 자신이 할 줄 아는 건 모두 한다는 전제 아래 김치뿐만 아니라 장도 담그고 있다.
아침 일찍부터 바쁜 서 할머니. 서 할머니의 하루는 여느 젊은이 못지 않게 짧다.
▨컴맹 50대의 e비즈니스
군무원으로 재직하다 얼마전 퇴직한 황윤성(51)씨는 얼마전까지만해도 컴퓨터 초보였다. 하지만 황씨는 시니어센터 창업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인터넷 포털사이트 사업에 몸담고 있다.
지역 생활 포털사이트인 ‘다오스(www.daos.net)’ 대구 달서지사 지사장이 황씨의 직함.
다오스는 정보검색, 지역의 상가정보.부동산매물정보, 지역 인터넷 신문발행.지역의 쇼핑정보, 공연.행사정보, 지역 이웃소식, 지역 특산물 등 다양한 지역생활정보를 중계하는 포털 사이트.
“당장은 수익 모델로 기대할 수 없지만 천천히 알려지면서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겁니다. 인터넷에 대해 잘 몰랐지만 천천히 뜯어보니 가능성이 있더군요”.
황씨의 창업비용은 점포 임대보증금을 제외하고 약 500만원 정도. 지역의 상가정보 등록 수수료 및 제품홍보 수수료, 광고주들이 내는 광고비와 생활용품 인터넷 슈퍼마켓 운영수익, 쇼핑몰 운영 등을 통해 수익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황씨는 e비즈니스사업이 고령자 창업에 적합한 직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늦은 나이에 점포형이나 자본집중형 창업을 할 경우, 만약 실패라도 하게되면 재기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
따라서 500만원 이하의 적당한 비용이 드는 e비즈니스 사업은 고령자 창업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그는 많은 고령자들이 컴퓨터 다루는 능력 하나만을 가지고 e비즈니스사업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사업의 세부적인 내용을 모르고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직장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1년이라도 빨리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박차고 나왔죠. 그런데 실제 부딪쳐보니까 사회가 호락호락하지는 않더군요”.
황씨는 자신처럼 많은 50대가 사실상의 노인세대로 전락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은 없다며 이를 정신적 공황이라고 표현했다. 앞으로 살아가야할 인생은 너무나 긴데 사회가 허락하는 일자리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황씨는 큰 사업의 성공을 이루진 않았지만 퇴직후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찾았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했다.
매일신문 최경철기자 (2002.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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